- -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 -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 심각한 사안이다 (샤를 드골)
- - 정치는 두번째로 오래 된 직업이라고 한다. 나는 이게 가장 오래된 직업과 매울 닮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정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지요? 정치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정치학 개론에 해당하는 수업의 첫머리에 학생들한테 늘 던지는 질문이다. 학생들이 머뭇거리다 내놓는 답은 십중팔구 국회에서의 이종격투기, 사과상자 속의 정치자금 같은 것들이다. 최근 들어 촛불집회 같은 것들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치인들과 관련된 부정적 이미지들이 우리 학생들이 떠올리는 정치의 인상이다.
나도 이런 학생들의 선입견에 딱 맞는 넌센스 퀴즈를 낸다. “자, 한강을 건너는 배에 여섯 살 꼬마 여자아이, 막 제대한 스물두 살 복학생 청년, 다음 달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 회사원 아가씨, 50대 남자 국회의원, 60대 초반 신부님 이렇게 탔습니다. 강 한가운데에서 배가 뒤집혔는데 구명튜브는 하나 밖에 없네요. 누구에게 이 튜브를 주어 생명을 구해야 할까요?” 여러 답이 나오지만, 국회의원을 드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넌센스 퀴즈의 답은 국회의원이다. 왜? 한강물이 오염되니까! 이 퀴즈 역시 정치(인)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 학생들이든 일반인들이든, 보통의 한국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태도는 무관심과 혐오가 대종을 이룬다. 잘 모르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에 대해 왜 배우고 알아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정치가 무엇인가 하는 얘기부터 해 보자.
정치란 무엇인가? 두 가지의 정의(definition)가 가능하다. 하나는 권력과 관련된 모든 인간행위를 정치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인간집단에서 공동결정의 수립과 관련된 모든 인간의 행위와 상호작용을 정치로 보는 것이다. 먼저 앞의 것부터 설명해보자. 정치를 권력과 관련된 모든 인간행위로 보면 다시 권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진다. 권력(power)이란 타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내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이다. 조선시대 백성들은 원치 않아도 부역에 나가야했다.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창씨개명정책에 따라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내게 부과되는 세금이 과하다 싶어 싫어도 소득이 있는 한국의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 바빠서 교통질서를 잠깐 무시하고 싶은 때에도 우리는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
위 예들은 모두 국가가 국민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권력은 이보다 훨씬 미시적인 범위에서도 작동합니다. 비오는 날, 회사에서 과장님이 점심회식을 하자고 한다. 뭘 먹을까, 나는 근처에 생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조심스레 의견을 냈건만, 과장님은 아, 이런 날은 뜨끈뜨근한 설렁탕이 최고지, 하신다. 나는 속마음과 다르게, 그럼요, 설렁탕 좋지요, 맞장구 치고 따라나선다. 직장상사라는 과장님의 지위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원천으로 나에게 작용한 것이다. 이렇게 타인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걸 하게 하는 모든 힘을 권력으로 보면 권력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遍在]한다. 정부, 시민 사이 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교회에도, 대학 강의실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연인 사이에도. 연인 사이에도? 그렇다. 연인 사이에서 권력은 ‘덜 사랑하는 자’가 갖는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연애지침서가 시시콜콜 지도하고 있는 사항은 바로 이런 사랑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는 테크닉들이다. 어쨌든 이렇게 권력을 넓게 정의하면 인간 사이의 모든 권력관계 또한 정치의 범위에 속하게 된다. 학교정치, 회사정치, 성의 정치, 연애의 정치학, 이런 용어들은 모두 권력을 중심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정치에 대한 두 번째의 이해방식은 인간집단에서 공동의 결정의 수립과 관련된 모든 인간의 행위를 정치로 보는 것이다. 어떤 인간 집단도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이사를 갈 것인지 말 것인지(가족), 등록금을 올릴 것인지 동결할 것인지(대학), 고교평준화정책을 유지할 것인지 해체할 것인지(정부), 미국의 요청대로 이랔에 파병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한국 정부)... 모두 그 결정이 해당 집단의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공동의 사안들이다. 이런 결정이 구성원 다수의 의사를 반영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의 독단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강압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설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정치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넓은 의미의 정치에 대한 정의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하면 정치의 의미는 매우 확장되고 정치와 정치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물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루려면 정치학 시간에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아지게 된다. 좁은 의미의 정치, 통상 정치학에서 다루는 정치는 위 두가지 의미 중 후자의 의미를 축소한 것, 즉 일정한 영토 내의 정치적 공동체(현대 사회에서는 주로 국민국가가 된다)에서 이루어지는 정책결정과 집행을 둘러싼 모든 인간행위와 상호작용을 말한다.
즉 특정한 정치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이 정치이다. 이 과정에는 입법, 행정, 사법이 다 포함되지만, 더욱 좁은 의미의 정치는 입법에 이르는 과정, 즉 정치공동체에 적용될 규칙을 만드는 과정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정치개념에 가장 가깝다.
어쨌든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갈등, 투쟁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투쟁이 불가피할까?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추구하는 가치는 같지만 그것이 희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형제의 존속을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폐지를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매매의 합법화를, 어떤 사람은 불법화를 선호한다. 어떤 사람들은 종합부동산세의 존속을, 또 어떤 사람은 완화나 폐지를 원한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에 찬성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대한다. 어떤 사람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강화하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완화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어떤 정치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사안이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때, 이 결정에 도달하고 집행하는 과정이 좁은 의미의 정치이다. 전제군주 시대엔 이 결정이 왕의 독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늘 날에도 독재국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다수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독재자, 혹은 소수의 지배집단에 의해 이런 결정이 내려진다. 이 결정이 다수 국민들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한다. 물론 ‘국민’이 정확히 누구인지, ‘다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에 ‘의사’가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어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두 매우 논쟁적이고 복잡한 이슈이지만 여기서는 더 들어가지 않는다.
어쨌든 정치의 최소한의 정의는 상이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정치공동체에서 구성원 모두를 구속할 공동의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를 정의하면 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우리는 좋든 싫든, 관심이 있든 없든, 정치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정치는 우리 삶을 구속하고 영향을 끼친다. 대학입시 3불정책의 폐지, (영국과 같은) 대출 받은 대학등록금의 취직 후 능력별 상환제도 도입, 청년실업대책을 위한 일자리 창출사업, 공무원 신규채용 정원 규모, 군 복무기간의 단축, 이 모든 정책의 향배가 여러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치에 의한 정책결정이다. 또 지금은 절실하게 자기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특정 세금의 도입․폐지․인상․인하, 비정규직 보호대책, 연금제도의 개혁, 나아가 한미 FTA와 대북정책까지도 모두 우리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결정들이다. 정치를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Who gets what, when, and how?)의 문제라고 한 해롤드 라스웰(Harold Lasswell)이나, 사회를 위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라고 한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말은 모두 이런 뜻인 것이다. 당연히 이런 결정들이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관심을 가져야만 정치가 나의 삶에 이로운 것이 되도록, 나아가 구성원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 ‘참여적 민주시민’이란 이런 결정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권리이자 의무로서 인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치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루는가? 정치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이나 연구목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정치학의 범위를 정확하게 설정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정치학의 하위분야는 정치이론, 정치제도, 정치경제, 정치과정, 국제정치 같은 것들이다. 정치이론은 정치사상과 정치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주로 다룬다. 정치제도는 의회, 대통령, 관료제, 혹은 조합주의적 결정기구 등 정치와 관련된 일련의 제도들을, 정치경제는 정치와 경제의 밀접한 관계를 다룬다. 정치과정은 정치와 관련된 개인과 집단의 행위를 다루는데, 이익집단, 여론, 선거, 정당 등이 포함된다. 국제정치는 전통적으로는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국가들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였으나 최근에 들어 국제기구나 초국적 기업이나 비정부기구 등 민간행위자의 역할 역시 주목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