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대학생활
대학과 대학생활
문화의 매력_이만교
우리는 평소 언어를 통해 감각하고 사유하고 상상하고 표현한다. 그것도 악기처럼 몸에 밀착한 형태가 아니라 아예 자신의 머릿속 마음속 심지어 무의식에까지 언어를 이식해 놓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생활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오늘날의 인간은 자연적 생명체가 아니라 언어기계가 이식된 ‘언어+인간 생명체/의 사이보그로 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지나치게 거칠게 혹은 안일하게 혹은 편의적으로 사용한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을 같은 어휘로 표현해 버리는가 하면, 안타까운 마음과 실망스러운 감정을 같은 방식으로 진술해 버린다. 혹은 사사로이 미운 감정과 공정하게 비판하는 행동을 하나로 뭉뚱그려 설명해 버린다. 언어를 이렇듯 함부로 사용하는 탓에 거칠거나 조잡하거나 무의미한 생각이나 표현, 인간관계 등에 시달린다.

아 다르고 어 다르며,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말하기에 따라 실질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그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지곤 한다. 다음의 일례를 살펴보자.
<보기 1>
가) “우리 커플 할래요?”
나) “우리 카풀 할래요?”

가) “그래서 대학 가겠니?”
나) “수능 시험 준비가 생각보다 어렵지?”

동료에게 “우리 카풀 할래요?” 라는 제안을 “우리 커플 할래요?” 라고 알아들어서 한동안
난처해질 수도 있다. 혹은 “대학 시험 준비가 생각보다 어렵지?” 라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대학 가겠니?”
라고 말을 건네는 바람에 시비만 번지고 말 수도 있다.
이처럼 언어 표현이 언어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보기 2>
가) 나는 그녀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다.

나) 그녀에게 고백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여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고백으로 인해 나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우울해 했는지 모른다.

만약에 실연당한 친구가 자신의 블로그에 위와 같은 문장을 남겨두었다고 가정해보자. 가)는 별다른 반응을 얻자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서술해 놓았다면 공감과 반응이 조금쯤 다를 것이다. 가)의 문장은 너무 단순하고 흔하디흔한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읽은 이에게는 글쓴이의 실제 경험까지도 매우 단순하고 흔하디흔한 경험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서술은, 가)에 비해 고백 이전과 이후가 선명하게 대비되는 효과를 통해 더욱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나)의 서술은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될 수 있다.
<보기 3>
다) 그녀에게 고백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여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단지 즉흥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여기는 듯 웃으며 거절해버렸다. 그로 인해 나는 또 얼마나 오래, 그녀와 다만 편한 친구 사이로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책망했는지 모른다.

라) 그녀에게 고백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여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단지 즉흥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여기는 듯 웃으며 거절해 버렸다. 아니 그녀 역시도 오래 전부터 이러한 내 감정을 눈치 채고 있었던 듯하다. 다만 웃으며 거절함으로서 내게 지나친 상처를 주지 않고 여전히 편한 친구로서 만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녀를 만나도 눈치가 보이고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결국 그 뒤로는 그녀와 둘이 만나는 것을 서로 은연중에 꺼렸다. 그러고 나서는 다만 그녀와 편안한 친구 사이로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책망했는지 모른다.

<보기 2, 3>의 가) 나) 다) 라)를 차례대로 읽고 비교해 보면, 마치 잘못 찍은 흐릿한 사진을 보는 기분에서 점차로 분위기나 표정, 배경까지 읽히는 선명한 사진을 접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똑같은 사건도 언어 서술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과 이해를 낳게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만 해도 단순히 구애했다가 거절당한 신파적이고도 감상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다)에서는 그녀가 ‘웃는 듯 거절해버린’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그리고 ‘다만 편한 친구 사이로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은 나 자신’을 책망하는 태도를 통해 단순히 신파적이고도 감상적인 구애의 실패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특히 라)에 이르면 그녀가 ‘다만 웃으며 거절함으로서 내게 지나친 상처를 주지 않고 여전히 편한 친구로서 만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심리 진술이 보태진다. 그리고 다)에서처럼 ‘다만 그녀와 편안한 친구 사이로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책망’하는 화자의 태도를 통해 보다 성숙한 시선을 발견할 수가 있다. 당연히 읽는 이의 이해 및 공감의 깊이 역시 라)에서 한결 구체화되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블로그에 올라오는 댓글의 반응 또한 사뭇 달라질 것이다.
또 다른 일례를 살펴보자.
<보기 4>
가)담배 끊기란 첫사랑을 잊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나)사실 담배 끊는 것보다 쉬운 것도 없다. 나는 벌써 담배를 열일곱 번이나 끊어보았다.

다)“담배 끊는 것보다 쉬운 것도 없더라.”
“끊었어?” 그녀가 놀라 묻자,
“그럼,” 그가 짧게 미소 짓더니 말했다. “벌써 열일곱 번이나 끊었지!”

가) 나) 모두 담배 끊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가)문장을 접한 독자는 공감을 하되, “맞아, 첫사랑이든 담배든 잊으려고 하면 도리어 더 간절하게 떠오른다는 점에서 끊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공감할 것이다. 반면에 나) 혹은 다)의 독자는 쿡, 하고 웃으며 접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연의 어려움에 대한 강조가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가) 못지않게 나)의 문장 역시 금연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더욱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다만 가)가 담배와 첫사랑 추억을 병치시켜 비유함으로써 금연의 어려움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나) 문장은 금연을 수없이 반복한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희화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가 서정적 어조라면 나)의 화자는 반어적이고 희화적인 어조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다)는 이러한 어조를 인물 ‘그’의 대사 일부로 다룸으로써, 유머 감각이 느껴지는 인물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같은 사실을 접하더라도 마음과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다가오듯, 같은 사실을 서술하더라도 문장 표현에 따라 색다른 의미를 띄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의 변화는 언제나 인식의 변화와 실질적 효과의 변화로 이어짐으로써 전혀 다른 층위의 사유를 하게 만든다.
<보기 5>
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기가쿠)

나)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모리다케)

다) 내가 경전을 읽고 있는 사이, 나팔꽃은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쿄로쿠)

가)의 경우, 위트가 각별하다. 우리는 통상 자신에게 소용없는 물건도 남에게 양보하지 않고 쟁여두는 비효율적인 습관이 있는데, 가)는 이러한 인간 심리를 풍자하는 동시에, 고작 우산 위의 눈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하이쿠 특유의 천진한 무소유 정신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맞아, 사람들은 자기 것은 짐이 되어도 버릴 줄을 모르지!’ 하고 공감하는 동시에 ‘하하, 우산 위의 눈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어리석을 만큼 천진하구나!’ 하고 유쾌한 이중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나)의 경우는 꽃잎 문양의 나비가 꽃 위에 고요히 앉아 있다가 문득 꽃과 분리되는 장면, 그리고 그것을 꽃잎인 줄로 착각했다가 나비인 줄 깨닫는 시인의 환희가 마치 봄기운의 아지랑이처럼 즐겁고 유쾌하게 전해진다. 다)는 경전 읽기와 나팔꽃의 개화를 나란히 놓음으로서 묘한 감응을 일으킨다. 일면 ‘내가 경전을 들여다보며 해독하느라 끙끙거리는 동안 나팔꽃은 만개했구나!’ 하는 깨우침으로 읽히면서 지식보다 생명을, 공부보다 실천을, 아는 것보다 즐기는 것을 중시여기는 시인의 생동적인 마음이 엿보인다. 동시에, ‘내가 경전을 읽으며 최선을 다해 마음 수행을 하듯, 비록 경전을 읽지는 못하지만 나팔꽃은 나팔꽃대로 최선을 다해 나팔꽃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구나!’ 하는 역지사지의 감탄으로도 읽힌다. 혹은 ‘경전을 깊이 읽고 나서 보니 한낱 나팔꽃의 개화까지도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다. 어쨌든 경전 읽기와 나팔꽃 개화가 여러 층위로 대비를 이루면서 복합적인 감상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하이쿠는 단 한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울림과 인식, 경이감까지 체감하게 해준다. 잠언 역시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널리 회자되는 명언 명구들이다.
<보기 6>
가)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나)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다.

다)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성격이 되기 때문이다. 성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라) 참으로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자기 인생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과 조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위의 아포리즘들은 모두 짧고 단순한 문장들이지만, 읽고 나면 문장을 읽은 시간보다도 한결 오랜 시간을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는 흔히 ‘승리는 값지고 좋은 것이고 패배는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것’이라는 우리의 평소 통념을 뒤집는다. 배움과 발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패배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반성과 생각에 잠기게 되고, 패배하거나 낙오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까지도 더불어 배운다. 그런 점에서 가)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보다 긍정적인 인식과 각오를 꾀할 수 있다. 나)는 단순히 지시하고 명령한다고 해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시켜준다. “텔레비전 보지 말고 공부해!” 하고 자식에게 말하면 그 자식은 당장은 텔레비전 보지 않고 공부할지 모르지만, 커서 누군가에게 명령․지시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 솔선수범이 되어야 하는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곰곰 되새기게 해준다. 다)는 성격이나 운명이, 생각이나 습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사실을 점층적으로 지시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각성하게 만들어준다. 라)는 진정한 지혜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식을 한계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데서부터 비로소 생긴다는 사실을 새로이 상기시켜준다. 이러한 아포리즘의 예들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흔하다. 인터넷에 들어가 ‘명언’이나 ‘잠언’ 같은 키워드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비록 짧고 단순하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세상을 새로운 각도와 각성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인식의 혁명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문학의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양식으로서 하이쿠와 잠언은, 우리에게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인식 세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문학은 이와 같은 시적 표현력과 잠언적 서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문장과 장르를 구사하는 예술 장르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장르는 아무래도 시와 소설이다. 아름다운 감응과 더불어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빼어난 언어 조탁 솜씨까지도 엿볼 수 있는 시편들은 얼마든지 많지만, 우선 떠오르는 인상적인 식구 한 구절씩만 살펴보자.
<보기 7>
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 자손은 차례차례로 오리라.

나) 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다) 꽃에는 고요한 부분이 있다. 그곳에 벌레가 있다.

가)는 고은의 시 ‘묘지송’ 첫 구절이다. 짧은 구절이지만, 조상의 무덤을 찾지 않는 후손들의 매정한 인정과 더불어, 찾아오는 사람 없는 묘지의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그 후손들 역시 언젠가는 결국 쓸쓸한 무덤 신세가 되리라고 하는 더욱 큰 의미의 비정과 스산함이 겹쳐 느껴지면서, 묘지의 고적한 풍경과 삶의 비정함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나)는 이성복의 ‘정든 유곽에서’의 첫 구절이다. 아마도 누이가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 음악을 들으면서 누이가 떠올리는 어떤 남자가 있는 듯하다. 추측컨대 누이는 그 남자를 사랑하는 듯 혹은 그리워하는 듯싶다. 그리고 화자는 누이의 그러한 심리 상태를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누이가 음악을 듣고 있으며, 그 음악과 관련하여 한 남자를 떠올리고 있으며, 더불어 화자가 그것을 알아채고 있는 듯한 상태를 한 구절로 절묘하게 포착해서 서술하고 있다. 다)는 이성선의 ‘꽃’ 전문이다. 우리는 흔히 벌레나 곤충은 더럽다고 피하면서 꽃은 예쁘다고 편애한다. 하지만 자연은 이러한 인간적 미추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꽃이 피기까지는 꽃가루를 날라다주는 벌레나 곤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마도 세상의 꽃들은 벌레나 곤충을 편애하고 인간을 오히려 해충 대하듯 여길지 모른다. 꽃과 벌레의 이와 같은 상생관계를 시인은 짧은 두 개의 문장으로 명료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이처럼 시는 하이쿠와 더불어 절묘한 포착과 묘사, 비유 등을 통하여 새로운 느낌과 이미지, 상상과 사유를 가능하도록 만든다. 다음은 몇몇 소설에서 따온 문장들이다.
<보기 8>
가) 오래 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때로는 촛불을 끄자마자 즉시 눈이 감겨서 ‘잠드는 구나’ 하고 생각할 틈조차 없는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반시간 후, 잠이 들었어야 할 시각이라는 생각에 깨어난다. 아직 손에 들고 있으려니 여기는 책을 놓으려고 하며, 촛불을 불어 끄려고 한다. 조금 전까지 읽고 있던 책에 대한 회상은 야릇한 사이에 단절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회상은 야릇한 모양으로 변한 것이다. 곧, 책에 나온 성당, 사중주(四重奏),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와의 대결 등등이, 흡사 나 자신의 일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깨어난 후에도 얼마 동안 계속되는데,……

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읽은 사람을 이따금 웃겨 주는 책이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다 읽고 나면 그 작가의 친한 친구가 되어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海風)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地上)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라) ˝너 또 일 전만, 일 전만 사정을 해서 군것질할래? 안 할래? 너 엄마가 무슨 고생을 해서 그 돈을 버시는지 알기나 하고 엄마를 그렇게 조르냐 조르길. 이 철딱서니 없는 계집애야. 그 돈은 엄마가 기생 바느질 품팔이를 하셔서 번 돈이야. 우리 엄마가 천한 기생 바느질 품팔이를 하신단 말야. 그 돈을 네가 매일 장작 한 단 살만큼이나 까먹는단 말야. 네가 아무리 어려도 그럴 순 없어. 다신 안 그런다고 해. 어서 다신 안 그런다고 항복을 하라니까.˝
오빠는 회초리로 사정없이 내 여윈 종아리를 후려치면서 목멘 소리로 내 잘못을 꾸짖었다. 그때 나는 너무 오래 아픔을 참고 매를 맞았다. 아픔보다 항복소리를 참는 게 더 힘들었다. 순하게 벌 받고 싶은 마음이 항복 소리를 오래 참을 수 있게 했다

가)는 프루스트의 장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시작 부분이다. 주인공 ‘마르셀’이 잠자리 드는 장면으로, 얼결에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 다시 깨어나 잠들기 전의 자연과 혼동하는 한편으로 책 내용과 실제 경험을 혼동한다. 누구나 한번쯤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 혹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교차하듯 유영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위의 문장은 이러한 경험을 독자들로 하여금 추체험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이러한 심층적 시선을 통해,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3대에 걸쳐 500여명이나 등장하는 수 천 쪽 분량의 감각과 기억을 환기해낸다. 12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무려 518개의 단어들을 하나의 문장 속에 배치하는 노력 등을 기울이며 푸르스트는 개인 내면에 새겨져 있는 내밀한 정서와 감각으로서의 시간을 새겨 놓았다. 우리는 아마 자신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에 대해서조차도 마르셀만큼 내밀하고도 구체적인 감각으로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내밀한 환기와 교감은 실로 문학적 글쓰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서두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용된 구절을 읽어보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것이다. ‘아, 그래 맞아, 나도 그런데!’ 하는 공감을 통해 자기 모습, 자기 감정을 추체험할 것이다. “다 읽고 나면 그 작가의 친한 친구가 되어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 이라는 구절을 통해, 자신이 평소 매력적인 작가에게 느꼈던 기분을 새삼 명확하게 환기하는 한편으로, 작가의 적실한 표현에 웃음과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이처럼 적절하고도 멋진 표현은 우리의 감정을 새롭고 즐겁게 일깨운다.

다)는 김승옥의 ‘무진기행’ 서두 부분이다. 소설은 시찰원들이 근대화 혹은 농촌 계몽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의 실용적이고도 개발론적인 관점과 달리, 화자는 무용지물의 안개를 무진의 명산물로 소개한다. 특히 인용한 문장에서 보듯, 화자는 어촌 하면 떠오르는 상투적인 이미지, 가령 뱃고동 울음이나 어선이 드나들고 항구, 갈매기가 나는 정도의 일반적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탄력 있는 햇빛” “공기의 저온” “‘해풍의 소금기” 등을 하나하나 환기시키는 동시에, 이것을 조합하여 수면제를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매우 개인적이고 순진한 공상을 진행시킨다. 동시에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라는 독특한 서술을 통해,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개인적 감수성을 선보인다.
그런가 하면 라)에서는 오빠에게 매 맞는 여동생의 경험을 추체험할 수 있다. 인용 부분은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일부분으로, 오빠가 철없이 떼쓰는 여동생을 뒷산으로 데려가 나무라는 대목이다. 오빠는 여동생 잘못을 무턱대고 나무라기보다는 여동생이 서둘러 잘못을 반성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고집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통절히 반성하는 마음이 깊어 “순하게 벌 받고 싶은 마음”으로 “항복 소리를 오래 참”는다.

아마도 독자는 비슷한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해보았을 터여서 읽으면서 옛 추억을 떠올렸을 법하다. 하지만 작가는 인물 심리까지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단지 오빠가 여동생을 나무랐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수준에서 서술하지 않고, 동생을 나무라고 싶지 않지만 나무라야 하는 오빠의 애틋한 심정, 그리고 항복을 하지 않고 자기 잘못에 해당하는 벌을 받으려 드는 꼬마 여주인공의 선량하면서도 결연한 자존감까지도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듯 문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감정을 새롭게 혹은 보다 명료하게 경험하도록 만들어주는 한편으로,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심리, 인간, 모험까지 경험하도록 도와준다. 빼어난 묘사와 관찰, 생각 깊은 아포리즘, 날렵한 유머나 위트, 인간애가 느껴지는 해학이나 비장, 개성적 인물이나 문제적 인물과의 만남, 극단적 실험이나 모험, 환상적 상상력 등을 통해 다종다양한 감각과 인식과 경험을 일깨워준다. 언어가 인류로 하여금 새로운 사고와 표현 및 인간관계를 성취하도록 만들었다면, 문학은 빼어난 언어의 조탁을 통해 보다 정치하고 유연한 사고, 명확하면서도 풍요로운 표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의사소통 및 교감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류가 문학 속에 저장해 놓은 인간적 가치는 그 어떤 문화유적이나 국보 못지않게 값지고 위대하다. 굳이 문학에 종사하거나 문학에 취미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문학을 통해 언어 능력을 익히고 활용한다면, 평소의 아침 햇살조차 단순한 아침 햇살이 아니라 독특한 표현과 인식과 환기가 가능한 아침 햇살로 바뀔 것이다. 친구와 나누는 잠깐의 대화에서조차도 익살과 재치, 기지와 지혜가 넘칠 것이고, 인생을 고민하는데 있어서도 한결 정치하고 명료하며 또한 역동적인 사유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 만큼 좋은 친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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