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이란_이정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 현상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것들이다. 실업자는 왜 생기는지? 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기가 이리
어려운지? 왜 경기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지? 빈부격차는 있을 수 밖에 없는지? 왜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는지? 왜 국회의원들은 매일 싸움만 하는지? 이런 궁금증에 답하려는 것이 사회과학이다.
사회과학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가지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사회과학은 단지 사회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사실 사회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은 여러가지 사회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요컨대 사회과학은 사회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작업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 현상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실업자는 왜 생기는지? 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기가 이리 어려운지? 왜 경기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지? 빈부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는지? 왜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는지? 왜 국회의원들은 매일 싸움만 하는지?
이런 궁금증에 답하려는 것이 사회과학이다. 사회과학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사회과학은 단지 사회 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사실 사회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은 여러 가지 사회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요컨대 사회과학은 사회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작업이다.
사회과학의 등장
사회과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회문제는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기 시작한 때부터 있었지만 사회과학이 성립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근대 이전에도 사회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는 늘 자기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 왔고 나름대로의 설명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당시 사회문제에 대한 설명은 대개 종교나 도덕의 입장에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사회 현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보다 특정한 도덕이나 종교라는 잣대에 비추어 재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서양 근대에 사회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첫째는 자연과학의 발전이다. 중세 말 이후 자연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그 때까지 신비롭게만 여겨졌던 많은 현상들이 명쾌하게 이해되어 갔다. 또 자연과학은 인간을 질병과 굶주림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하여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지금 우리가 평균 80여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자연과학의 진보 덕분이다. 이런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에 적용하여 사회의 작동원리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여기서 자연과학의 방법이란 종교나 도덕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연구대상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시민사회의 성장이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국가와 분리된 자율적 사회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근대 이전에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봉건영주의 농노이거나 국가에 복속된 신민일 뿐이었다. ‘사회’가 국가와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국가 통치술 외에 사회에 대한 별도의 이해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민이 천부인권을 가진 존재임을 천명했으며 자연히 군주로부터 독립된 ‘시민’이 국가의 주체로 설정되었다. 그로부터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와 시민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답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시민사회의 성장에 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시장경제의 확산이다. 시장은 참여자 간의 자유로운 거래를 본질로 하며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서 초기 시장경제의 주역인 부르주아지(시민계급)는 절대왕권과 투쟁하면서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확보해갔다. 이에 따라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사회의 영역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 되었으며 그것이 사회과학의 중심적 과제가 되었다. 사회과학의 등장은 사회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사회구조와 사회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과거 사람들은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주어진 사회구조는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고대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떤 사회질서가 필요한가를 탐구했으나 그것은 주로 위정자의 통치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계몽사상과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은 근대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사회의 작동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기초로 사회를 합리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과학을 통해 사회개혁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
사회과학은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사회과학은 얼마나 ‘과학적’인가? 사회과학이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 노력하며 이런 점에서 종교나 철학과 구분된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이 때 과학적으로 해명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째, 경험적 사실을 중시한다. 과학은 세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표명하는 작업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나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경험적 사실이 중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철학이나 종교적 사고방식에 맞서 사회과학을 체계화시키려했던 초기 학자들은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 이론화가 사회과학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위해 관찰이나 통계 수집과 같은 방법을 중시했다.
또한 과학적 이론이나 명제의 진실성은 그것이 경험적 사실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에 의해 판단된다. 이 때 ‘경험적 사실을 중시한다’거나 ‘경험적 사실을 잘 설명한다’ 는 말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한 동안 과학적 명제의 진실성은 경험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여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즉 과학적 명제는 경험적 사실에 의해 입증되어야 옳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입증을 위해 자연과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실험이다. 그 고전적인 예로 갈릴레이가 발견한 낙하의 법칙을 들 수 있다. 갈릴레이 이전에 사람들은 서로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경우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런 견해가 이론화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었다.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그는 중력의 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 무게가 다른 매끄러운 금속공을 경사면에서 굴리는 실험을 통해 모든 물체는 무게에 관계없이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낙하한다는 것, 그리고 낙하한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후대 사람들은 진공 상태에서의 낙하 실험을 통해 갈릴레이의 명제를 다시 확인했다.
지금은 경험적 사실과 일치해야만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견해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사실들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험적으로 다 입증되지 않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잘 드러내는 것이 과학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경험적 사실과 크게 어긋나는 명제나 이론은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여전히 과학의 상식이다. 한 때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근대화론’이라는 것이 있었다.
개발도상국이 서구의 제도와 문화를 빨리 받아들여야 성장을 한다는 이론이었다. 그런데 남미 국가들은 서구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였는데도 경제는 퇴보했고 오랫동안 독재에 신음했다. 이런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근대화론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한편 당시 남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된 이론이 ‘종속이론’이다. 종속이론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성장이 지체된다는 이론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선진국에의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런 경험적 사실은 종속이론의 오류를 보여준 것으로 판단되었다.
둘째, 객관적이어야 한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일단 연구자의 주관이나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인간이 주관을 완전히 배제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 정신의 능동적 작용이 없으면 대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오히려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남들도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과학이 객관적이 되게 하는 중요한 요건은 과학적 절차이다. 어떤 주장을 제기하는 이유와 근거가 분명히 제기되어 남들이 옳은가 틀린가를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자연과학의 경우 실험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 실험의 절차가 공개되어 타인도 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사회과학의 경우 사용한 자료가 얼마나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가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우리가 신문방송에서 전해 듣는 사실 중에는 이런 객관성을 갖추지 못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신문 방송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기적이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과학적이려면 우리나라 전체 국민을 잘 대표하는 표본에 대한 조사를 통해 확인되어야 하며, 조사 과정에 조사자의 주관이나 편견이 개입되지 않고 응답자의 생각을 정확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기적’인가 여부를 조사하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으므로 남들이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
셋째, 규칙성을 찾아내고 그것에 작용하는 원리를 찾으려 한다. 무엇보다 과학은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보다는 모든 현상에 적용되는 보편성과 규칙성에 관심이 있다. 자연과학의 경우 이 점은 너무 분명하다. 사회과학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대해 연구한다고 할 때 ‘김○○씨는 권위주의적이고, 이△△씨는 온정주의적이고, 박□□씨는 가족주의적이고...’라는 식으로 개별 국민들의 성격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특징에 관심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서양인보다 더 권위주의적인지, 20년 전에 비해 덜 권위주의적이 되었는지, 연령이 젊을수록 덜 권위주의적인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과학은 ‘왜?’에 답하고자 한다. 만일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권위주의적이라면 왜 그런가를 따진다. 단지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가를 설명하려 한다. 즉 어떤 현상을 인과관계에 의해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이 때 가능하면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원리를 찾아내려 한다. 예를 들어 물을 끓이면 증발을 하고 추우면 어는 현상들을 하나의 원리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다. 사회 현상 중에는 이런 단일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사회과학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를 찾아내려 한다. 우리가 보는 대졸 취업난이나 실업은 시장원리에 의해 상당 부분 설명될 수 있다.
사회과학의 독자적 성격
사회과학은 과학으로서의 특징을 자연과학과 공유하지만, 동시에 자연과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진다. 그것은 사회과학에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보편타당한 법칙을 별로 못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과학은 예측도 잘 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회과학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사회과학자들은 1997년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을 거의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2008년에 미국을 시발로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초래될 것을 예측하지도 못했다. 몇몇 경제학자가 이번 경제위기를 예측하긴 했으나 아주 대략적인 추측에 불과했다. 그래서 ‘도대체 그 많은 경제학자들이 다 무얼 하고 있었냐?’라는 힐난성 의문도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과학에 보편타당한 법칙이 별로 없는 이유는 사회 현상과 자연 현상이 존재론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현상에는 불변의 규칙성이 많이 발견된다.
그 이유는 자연을 이루는 물질의 움직임이 일정한 경로를 따르기 때문이다. 낙하의 법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이런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는 낙하하는 물체는 시공에 관계없이 주어진 경로를 따라 낙하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이론에서는 물질의 움직임이 반드시 주어진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고 보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는 큰 물체들은 주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반면 사회 현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인간인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주체적 행위를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를 미리 예측할 수 없으며 사회 는 늘 변화한다. 서로에게 잔뜩 화가 난 두 사람이 한 방에 들어갔다고 하자. 두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까?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싸울 수도 있고, 냉냉하게 돌아나올 수도 있고, 술 한잔 하고 화해할 수도 있다. 아마 본인들도 미리 모를 것이다. 또한 인간은 늘 과거의 행위를 돌아보면서 더 나은 행위를 하려 하는 성찰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외부의 자극이 동일해도 그것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조금씩이라도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현상이 제멋대로이고 아무 규칙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엔 분명 규칙성이 있고, 대개의 사람이 따라가는 행동방식이 있다. 사람들은 경기가 좋아지고 소득이 늘면 소비를 늘리고, 경기가 나빠지면 소비를 줄인다. 이런 규칙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가 경제 분야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가장 자연과학에 가까운 이론과 연구방법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은 인간행위에 대해 단순한 가정을 한다. 인간은 주어진 비용으로 효용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가정이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행위이다.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 행위를 한다는 것이 가정되면 인간 행위에 대한 예측도 가능해지고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 보편타당한 법칙을 제시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사회 현상에서 발견되는 규칙성은 자연 현상의 규칙성과는 달라서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경제학의 가정과 달리 인간행위는 복합적으로 결정된다.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은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의 행위는 훨씬 복합적이다. 인간은 반드시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이타적으로도 행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고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 행위에는 사회규범이나 가치관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설사 경제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사회규범이 장려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일본 사용자들은 기업이 어려워도 최소한 정규 노동자는 해고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리해고는 정말 최후의 수단이며, 그런 정리해고를 하게 되면 사장도 책임을 지고 옷을 벗는다. 이것은 기업이 조금만 어려우면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는 미국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사회규범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한다. 사회규범은 법률같은 것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것이므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규범도 바뀐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오랫동안 여자는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 규범이 있었지만 이젠 크게 바뀌었다. 이렇게 규범은 늘 변화하므로 그것이 인간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미리 알 수 없다.
사회과학에 보편적 법칙이 존재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연구결과가 다시 사회에 영향을 미쳐 사회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예가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과 자살적 예측(suicidal prediction)이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연구자의 연구결과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그대로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이런 연구결과가 발표되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집을 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주택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실제로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 자살적 예측이란 사회과학자의 예측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예측과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이다. 경제학자들이 앞으로 경기가 침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하자. 이에 영향을 받아 정부가 경기부양정책을 펴면 사람들도 소비를 늘려 경기가 침체하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사회는 개개인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인간 행위는 복합적이고 가변적이므로 사회 현상에는 보편타당한 법칙이 존재하기 어렵다.
경제현상은 비교적 규칙성이 존재하는 영역이지만 역시 보편타당한 법칙이란 존재하기 어렵고, 여타 사회 현상은 더더욱 그러하다.
사회과학의 주요 관심
사회 현상에 대해 보편타당한 법칙을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사회과학의 주된 관심은 자연과학과 다르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사회과학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 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한다. 예를 들어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것이다. 여기서 원인을 밝힌다는 것은 사회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회 현상의 메커니즘이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이 보편타당한 법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메커니즘은 늘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현상의 메커니즘이 밝혀졌다고 해서 그 현상이 또 다시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회과학은 거의 사후적 설명에 머문다. 일단 일어난 현상의 원인을 사후에 설명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날기 시작한다’는 문구가 이런 사정을 잘 표현주고 있다.
둘째, 위와 유사한 맥락에서, 사회과학은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일반 법칙의 발견보다 개별 사회를 잘 이해하는 것을 중시한다. 불평등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자. 불평등에 관해서도 모든 사회에 적용되는 일반적 명제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불평등이 커지면 계층간 갈등(대립)이 심해진다’라는 명제를 들 수 있다. 이런 명제는 시공을 초월하여 비교적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명제가 절대적으로 타당하진 않다. 설령 불평등이 크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면 계층간 대립은 나타나지 않으며, 국가가 갈등을 교묘하게 통제해서 갈등이 나타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회과학에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제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불평등에 대한 일반적 명제를 발전시키는 것보다 각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심층적으로 잘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만일 우리나라의 불평등 문제를 연구한다면 우리나라의 불평등 정도가 외국에 비해 더 큰지, 우리나라의 불평등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무엇인지, 한국 사람들은 불평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을 아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요컨대 사회과학에서는 개별 사회의 맥락을 중시한다.
셋째, 사회과학에서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를 중시한다. 겉으로 나타난 행위만이 아니라 행위의 기반이 되는 의도, 가치관, 규범 등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인간행위와 사회구조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는 물론 생물학에서도 동물의 행위 동기는 대체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동물이 움직이는 것은 대개 먹이를 찾고,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하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인간 행위의 의도는 다양하다. 자동차를 사는 사람 중에는 편리하겠다는 동기에서 사는 사람이 제일 많겠지만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사는 사람도 많다. 이런 동기를 이해하지 않고 단지 차를 사는 행위만 보아서는 사회 현상을 충분히 알 수 없다.
넷째, 사회과학은 과학으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철학으로서의 성격도 상당히 가진다. 앞에 말한 것처럼 사회는 늘 변화하고, 여기에 사람들이 가지는 가치관이 중요한 요인이고, 연구자가 제시하는 지식이 사람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므로, 사회과학에서는 ‘왜’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다시 불평등 문제로 돌아가면 왜 불평등이 나타나는가 뿐만 아니라 이 불평등이 정당한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연구과제가 된다. 사회과학자들이 불평등은 부당하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일반 사람들이 받아들이면 실제로 불평등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자들은 사회 현상에 대한 가치판단을 적극적으로 하고 자기 나름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사회를 해석하고 다시 이를 기초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주요 임무의 하나로 본다. 그러다보니 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회과학자마다 상이한 해석을 내놓은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사회과학의 분과학문들
사회과학에는 여러 분과 학문들이 있다. 크게 기초 사회과학과 응용 사회과학으로 나눌 수 있다. 기초 사회과학에는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등이 있고 응용 사회과학에는 경영학, 행정학, 사회복지학, 신문방송학 등이 있다. 심리학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중간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학은 주로 정치현상을 다룬다. 국가 권력과 국민의 관계, 민주주의의 작동원리, 다양한 국민의 의사가 결집되거나 조정되는 절차, 정당과 선거 등을 다룬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국가라는 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은 주로 경제현상을 다룬다. 수요와 공급, 생산과 소비, 분배의 원리, 그리고 화폐가 유통되는 메커니즘 등을 연구함으로써 경제성장과 경제변동, 고용과 실업, 인플레, 국제 수지 변동 등의 문제들을 해명하는 학문이다.
사회학은 일단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라는 것이 광범위하고도 경계가 모호하므로 주로 경제학과 정치학이 다루지 않는 사회의 영역을 연구한다. 집단과 조직, 연결망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방식, 가족을 위시한 사회제도, 사회불평등, 사회운동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문화를 주로 연구한다.
인류학은 문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연구한다.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를 연구함으로써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동하는지를 연구한다. 인류학은 보편적인 사회현상보다는 각 문화에 개별적이고 특수한 측면에 관심을 가진다.
경영학은 기업경영에 대한 학문으로 어떻게 하면 기업을 잘 경영할 것인가를 연구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기업이라는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고 인사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기업이 만든 상품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판매할 것인가, 기업의 자금은 어떻게 운용하고 관리할 것인가 등을 연구한다.
행정학은 정부 및 공공기관의 운영에 대한 학문이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조직체인만큼 이 조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그리고 정부가 어떻게 각종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것인가를 연구한다.
사회복지학은 사회복지에 대한 학문이다. 사회복지 정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빈곤층,장애인, 노인 등 여러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잘 보살피고 도울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한다.
신문방송학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밝히며, 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방식을 연구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문 방송 등 매스미디어가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경로이므로 매스미디어가 운영되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 등을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