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수업과 생활, 멋지게 관리하기
교수,
학문적 스승이자 인생의 멘토
장성민
나를 찾아온 졸업을 앞둔 학생 중에는 대학 4년간의 세월을 효율적으로 보내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학생들이 뜻밖에 많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에 들어왔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거나, 알고는 있지만 성실하게 실생활에 적용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가운데는 교수와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다. 간접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만약 교수에 관한 좀 더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잘 적용했더라면 알찬 대학시절을 보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스로 대학생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친구나 선배들을 통해 전해들은 정보 가운데는 모두에게 적용할 수 없는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 적지 않다. 교수와 관련된 것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한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면 교수와 관련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 교수의 역할은 무엇이며, 교수와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지, 이와 관련해 학생들에게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한번 살펴보자.
교수의 역할 이해하기
먼저, 교수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학생이 교수와의 관계를 어떤 측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역할에 대해서 대강은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일반적으로 교수의 역할은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학문 연구’는 교수의 역할 중에 가장 비중이 크고 본질적인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깊이 연구해 학문을 발전시킨다.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연구를 통해서 강의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가 사회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교수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저서를 발간한다. 최근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과거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연구업적을 요구하고 있어서 교수는 연구에 더욱 전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쉽게도 교수는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지도하는 데 시간적 제약을 받는다.
둘째로, ‘학생을 가르치는 역할’ 또한 교수의 주된 사명이다. 이것은 연구를 통해서 얻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학문적 역량을 키워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수는 연구에 매진해야 하고, 성실하게 강의를 준비해야 할 뿐 아니라, 지식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효율적인 교수법을 개발해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강의평가를 시행하고 있으므로 교수에게 많은 도전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교양인으로서,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지도하는 일을 한다. 대학 교육이 단지 지식의 전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로, 앞서 말한 두 가지 역할과 비교하면 덜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지만, 교수는 학문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필요한 ‘봉사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오늘날은 교수가 지식의 상아탑에만 머무는 시대가 아니므로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일반적인 봉사활동으로는 주로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 봉사, 연구프로젝트 참여, 강연, 세미나, 심포지엄 등이 있다.
바람직한 관계 만들기
그러면, 실제로 교수와 학생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인가? 앞서 언급한 교수의 역할에 비춰볼 때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지식적 관계’와 ‘인격적 관계’다. 하나씩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해 보자. 먼저, ‘지식적 관계’는 말 그대로 교수가 강의실에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습득하는 관계를 말한다. 대학에서 이것은 가장 본질적인 영역이다. 물론, 강의내용을 알차게 준비하고 효과적인 교수법을 통해서 잘 전달해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수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교수가 이러한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그 수준을 높이려면 학생들의 성실성과 적극성 또한 요구된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쌍방 간 상호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강의가 있다. 예전에 학교 업무 때문에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작업하며 바쁘게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강의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뒤늦게야 깨닫고 서둘러 학교로 갔다. 휴대전화가 흔하지 않았던 때라 연락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강의시간이 무려 1시간이나 넘게 지났는데도 한 학생도 강의실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주제를 정해 토론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내게 큰 감동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강의에 임하는 이런 적극적 자세는 학기 내내 지속되었다. 이 때문에 나 역시 그 수업에 더 열심히 임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만족감도 높일 수 있었다. 결국 그 수업은 내게 가장 흥미진진하고 보람된 수업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성실하고 적극적인 태도가 가르치는 교수에게는 큰 자극제가 된다. 강의시간에 때로는 기발한 질문들도 나온다. 그래서 학생들과 같이 토론하며 문제를 풀어볼 때 오히려 흥미 있고 유익한 강의가 된다. 교수로서는 학생들의 이런 능동적인 태도만큼 반가운 것도 없다. 아무래도 이런 강의는 더 관심이 가고,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충실해진다. 학생들 자신이 강의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지식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성실성이다.
다른 하나인 ‘인격적 관계’는, 교수와 학생 간의 개인적 관계를 말한다. 이 부분은 ‘지식적 관계’ 이상으로 중요하다. 말하자면, ‘멘토mentor’의 관계다. 잘 알려졌듯이 멘토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왕 오디세이아가 트로이전쟁에 나가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 텔레마코스를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 멘토르에게 맡겼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로부터 멘토는 충고자, 조언자, 안내자란 뜻으로 쓰인다. 교수가 인생의 멘토가 될 수 있다면 단순한 지식의 전달 이상으로 좋은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은 단순히 이론적 전달만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다. 더욱 풍성하고 가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과 인격의 전달이 필요하다. 부버M. Buber는 그의 책 ?나와 너?에서 ‘나-그것’과 ‘나-너’를 구별한다. ‘그것’이 비인격적 존재라면, ‘너’는 인격적 존재를 뜻한다. 따라서 ‘나’는 ‘너’와의 관계에서만 진정한 ‘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와 같은 과학철학자들도 모든 지식은 ‘인격적 참여’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은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교수를 단지 ‘그것’, 즉 지식을 주는 사람, 또는 학점을 주는 사람 정도로 여긴다면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더 소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시절에 교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다양한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대학생활은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생 대부분은 4년 동안 단지 이론적 지식과 학점만을 받아서 교정을 나선다.
인격적 관계는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보면, ‘길들인다’라는 것은 곧 ‘관계 맺음’을 뜻한다는 것, 그리고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너에게 나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부분은 매우 교훈적이다. 말하자면, 일대일의 친밀한 관계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 간의 인격적 관계를 위해서도 상호 간에 적극적 관심이 중요하다. 당연히 학생들에 대한 교수의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생에게도 교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존경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학생 자신을 위해서다. 교수와 학생 간에 교감交感이 없이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관심에서부터 인격적 관계가 싹튼다. 물론 그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간혹 교수를 자기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지나치게 실리적인 학생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그것’의 관계로 돌아가기 때문에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서로 간에 깊은 관심과 존경심이 표현될 때만 ‘나와 너’의 관계, 곧 친밀감이 생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예컨대, 학생들이 교수를 찾는 것은 주로 행정적인 용무, 즉 추천서를 받을 때라든지, 시험 성적에 대한 문의가 있을 때라든지, 학사와 관련된 문제가 생겼을 때라든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평소에 학생으로서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 얘기하는 학생들도 있다. 교수라는 이미지가 권위적이라서 다가가기에는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극적인 태도로는 교수와의 인격적인 관계, 즉 ‘나와 너’의 관계는 이뤄지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인격적 관계를 맺을 기회는 학생 스스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 자신의 의지다. 실제로 학교에서 보면 적극적으로 교수와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서 알차고 유익한 대학시절을 보낸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교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강의, 봉사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교수가 일일이 많은 학생을 찾아서 교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 편에서 교수와 친밀한 관계를 갖도록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요컨대, ‘교수를 나의 멘토로 삼아라’. 이미 졸업했지만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교류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나는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가능하면 이런 제자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선생의 마음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외국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의 선생님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대화도 친구처럼 친밀하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사제지간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지적인 것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유익과 기쁨을 얻었는지 모른다. 오늘도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내 마음에서 늘 떠나지 않는다.
기회를 붙잡아라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내 앞에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면서 동시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 지혜다. 대학 4년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입학할 때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 기회를 낭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몇 배로 가치 있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교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앞에 주어진 만남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가령, 공부를 하다 보면 내 마음에 꼭 드는 교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필수과목이 아닌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를 피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가치 있고 좋은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만날 수 있겠는가. 스티븐 코비가 말했듯이 누구든지 성공하려면 모든 사람과 관계의 폭을 넓혀야 한다. 물론 이것은 테크닉을 통해서 접근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와의 관계도 기회임을 잊지 말고 그들의 마음을 얻도록 힘쓰라. 누구든지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분명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분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 학생 대부분은 피상적인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모든 편견을 버리고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라.
나는 대학시절 프랑스인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프랑스어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프랑스어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데다가, 특히 그 사람들의 태도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시해 버렸다. 그런데 몇 년 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프랑스 유학의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만약에 그때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잘 붙잡았더라면 언어 때문에 쏟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그 사람들을 친구로 삼았더라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컸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소중히 여겨라.
대학 4년의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대학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졸업 후에도 사회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교수와 좋은 관계를 맺으라. 지식을 얻는 데 보다 성실하고, 인격적 관계에서 보다 친밀감을 유지하도록 하라. 대학에서 주어진 모든 기회를 선용하라.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고 성공하고 가치 있는 것에 방향을 잡고 나가라. 그렇게 하면 대학 4년은 즐겁고 알찬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