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봉사와축제, 뜨겁게 만끽하기
봉사와 교류,
소통과 확장의 밑거름
이기정
우리 사회는 언제나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을 기억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워왔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반칙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해 왔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이긴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한가?
유명한 프로 바둑 기사들이 바둑을 두는 것을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곤 한다. 그럴 때, 가끔 어이없게도 나와 같은 아마추어도 실수하지 않을 평범한 수를 그 유명한 프로 9단 바둑 기사는 보지 못하고 실수를 해서 바둑을 망치는 경우를 보았다. 왜 프로 바둑 기사는 그 수를 읽지 못했을까? 이기려는 욕심이 너무 앞섰기 때문이다. 경쟁은 이기려는 욕심에서 비롯되며, 그러한 욕심으로 인해 일을 망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먼 길을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이제 여러분의 옆에 있는 친구들을 단순히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갈 동반자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줄넘기 줄을 허리에 감고 서로 상대를 먼저 넘어지게 하는 놀이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기 위해서 내 힘만을 이용해 잡아당기는 것보다는 가끔 내 힘을 풀어주는 것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먼 길을 갈 친구들에게 가끔은 양보하고 져주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이제 대학생이 된 여러분들은 ‘더불어 잘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재능을 함께 나눠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여러분은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사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초등학교 학생들과 중학생들에게 1주일 한 번씩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중에 인상에 남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 내 연구실을 찾아온 학생들은 영어 기초가 전혀 없었다. 우선 그 아이들에게 미래의 꿈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중에 한 명은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였고, 나머지 두 명은 꿈에 관해 생각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요리사가 되겠다고 말한 학생에게 “요리사도 참 좋은 직업이지만, 좀 더 커다란 희망을 가지면 어떻겠니?”라고 말했더니, 그 학생은 “그냥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해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한창 생기발랄하고, 앞으로 펼쳐질 보랏빛 미래에 벅찬 희망의 설렘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 자신의 꿈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 이후에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씩 다가가면서 마음의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하면서 함께 영어 공부를 했다. 그 결과, 중간고사를 마친 다음 날 요리사가 되겠다던 그 학생이 “선생님, 저 요리사 되지 않을래요. 그냥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 학생은 영어시험에서 92점을 받았던 것이다. 여러분도 이러한 봉사를 통한 감동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조그만 힘이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0년 훨씬 넘게 한양대학교 국제협력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의 국제협력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특강을 할 기회가 많이 있다. 나는 그런 특강을 할 때마다 국제화란 ‘세계의 이웃들과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에서 여러분에게 경쟁보다는 친구들과 더불어 잘 사는 법을 배우고, 소외된 사람들과 우리의 재능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동일한 방식이 국제화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흔히 국제화는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를 배우는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선진국의 앞선 기술과 제도를 배우는 것도 국제화의 주된 목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우리의 것을 나눠주는 것이 더욱 중요한 국제화의 목적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나라와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속 한국의 오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접을 받는 나라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가전제품은 먼지가 가득 쌓인 채 한쪽 구석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도 가장 싼 가격에…. 그 당시 한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수출된 자동차는 빈번한 고장과 싼 가격으로 미국의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놀림감으로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뉴욕 맨해튼의 가장 비싼 광고판에서 언제나 한국 제품들이 광고되고 있으며, 해외 유명 공항이나 최고급 호텔에서 거의 모든 가전제품이 한국산으로 대체된 것이 불과 최근의 일들이다. 외국의 유명 경제지에 의하면 2050년에는 대한민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하니, 정말 어느새 갑자기 훌쩍 커버린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대학들은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특히 국제화 분야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였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인 유학생이 수천 명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은 8만 명 이상의 유학생이 전국에 있는 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곧 10만 명을 돌파하리라 기대된다. 앞으로 여러분이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 강의실에서 적어도 외국인 유학생 한두 명은 만나게 될 것이다.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외국인 유학생 8만 명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본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 비해 한국인들의 세계 시민 의식은 아직 부족하다. 실제로 선진국 출신의 외국인과는 달리 제3세계 출신 외국인들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편견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약 4만 명의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의 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을 포기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있다. 우리는 진정 이들을 포용하고 더불어 잘 살려고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처음 영어를 배웠던 중학교 1학년 시절, 내 인생 최초의 영어 선생님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이었다. 터키와 에티오피아에는 아직도 참전 용사들 가운데 자신의 젊음을 한국전쟁에 바쳤던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노병들이 많이 있다. 또한 서울에 있는 장충체육관을 1960년대에 필리핀의 원조로 완성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오늘 우리의 모습은 이러한 많은 국가들로부터의 도움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성취한 것을 베풀어야 할 때다. 얼마 전에 한국이 선진국 원조 공여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뀐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에 절대 빈곤과 폐허 상태에서 원조에 의존하던 우리가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뀐 것은 다른 개발도상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문학적 성장 동력
매 년 정부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10대 성장 동력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로봇, 자동차, 에너지와 같이 주로 미래 잠재 수요가 크며 경쟁우위에 설 수 있는 이공계통의 분야들이 속한다. 이를 통해서 창출되는 부가 우리나라를 경제적 대국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존경받는 품위를 갖춘 나라를 만들지는 못한다. 현재 경제적으로는 강대국이지만 세계 시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지 누구나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러한 성장 동력에 반드시 양보, 신뢰, 배려, 정직과 같은 인문학적 소양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문학적 성장 동력은 해가 바뀌면서, 산업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이며, 이를 통해 이공계의 성장 동력에서 창출되는 가치가 진정한 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나라와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여러분의 삶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