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수업과생활, 멋지게 관리하기
2부.수업과생활, 멋지게 관리하기
2부 수업과 생활, 멋지게 관리하기
독서,
포기하지 않고 책 읽는 방법
박영률
대학교는 중·고등학교와 다르다. 공부의 내용과 방법이 다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배워야 할 것이 정해져 있다. 배워야 할 사람도 정해져 있다. 교과서의 내용을 교사에게 배운다. 대학은 그렇지 않다. 배워야 할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강의 제목은 제목일 뿐이다. 내용은 학생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배워야 할 사람도 마찬가지다. 교수는 도우미일 뿐이다. 누구에게 배울 것인가는 학생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대학에서 책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책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저자가 생각한 것의 기록이다. 저자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계산하고 증명한 것을 기록한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옳다’고 평가한 책이 고전이고, 명저고, 좋은 책이다. 대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찾아 읽고 생각한다. 이것이 대학생의 공부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의 공부 내용은 학생이 고른 책의 내용이 되고, 대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은 학생이 선택한 책의 저자가 된다. 고등학교 시절을 아직 마음속에서 다 마치지 못한 대학생이라면 이런 의문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과연 내가 공부할 내용과 배울 스승을 나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있을까?’ 있다. 자신이 선택한 전공, 또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공과목이 바로 공부할 내용이고,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책의 저자가 자신의 옳은 선생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교수는 다만 학생의 욕구에 가장 적합한 책이 무엇인지,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대학생은 대학에서 교과서를 가지고 선생님의 지도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관심에 따라 자신이 고른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보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위인과 천재와 전문가에게 직접 묻고 답한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때처럼 ‘아담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고 외우는 것은 대학의 공부가 아니다. 대학생은 선생님의 설명 없이 자신이 직접 '국부론'이라는 책을 열고 아담 스미스를 직접 만난다. 듣기 대신 읽고, 믿기 대신 의심하고, 외우기 대신 생각한다. 저자의 이야기 가운데 찬성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되,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혼자 힘으로 부족할 때 대학생은 자신의 의견과 비슷한 또 다른 전문가, 예를 들면 케인즈의 책을 찾아 읽고 그의 이야기를 빌려 스미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럴 때 학생의 선생은 스미스와 케인즈, 이렇게 두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대학의 교수는 학생에게 무엇이 될까? 둘의 관계는 학문의 동료, 또는 동업자의 관계다. 둘이 함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문의 분야에서 과거의 위대한 스승들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를 찾아내는 일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대학생에게 책은 공부의 내용이자 스승의 이름이다.
무엇이 책인가?
‘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보이는’ 책이 있다. 종이 또는 그와 비슷한 물질에 글자와 그림 등을 인쇄해 스물대여섯 쪽 이상을 서로 떨어지지 않게 묶고, 쉽게 파손되지 않도록 표지를 씌워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책이라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일반적 정의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인쇄물이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독자의 눈으로 보자면 저자의 뇌를 나의 뇌와 연결시킬 수 있는 유력한 장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역사가의 관점에서 보면, 책은 모든 인간 사유의 화석이다. 책을 통해 역사가는 1000년 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 미디어 학자가 보면, 책은 인간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가운데 처음으로 인간의 생각과 감각을 일반화시킨 물건이다.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통해 사람들은 똑같은 것이 두 개 이상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는 책을 통해 한 사회에서 함께 사는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관찰한다. 디자이너가 보는 책은 글자와 인쇄술, 그리고 종이가 서로 만나 만들어지는 사유의 수사학이다. 시인에게 책은 영감의 냉장고이고, 소설가에게 책은 시간의 통조림이며, 학자에게 책은 자기 사유의 발자국이다.
책을 보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눈길이 있다. 책을 물건으로 보는 것과 기능으로 보는 것이다. 물건으로 보는 사람에게 전자책이나 소리 책은 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기능으로 보는 사람에게 그것은 모두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좋은 책일 수 있다. 우리는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책은 오랫동안 그 모양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기능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의 기록을 위해 사용되던 책이 현재의 사정을 기록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하고, 미래의 꿈을 그리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신의 이야기만을 전달하던 책이 인간의 삶을 노래하더니, 이제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도 전달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책의 모양과 기능도 다르지 않다.
매력적인 책 고르기
책의 출발은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로 정리한다. 생각이 모양을 갖추면 글로 옮긴다. 대부분의 생각은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양이 갖춰진다. 원고가 완성되면 출판사의 편집자와 내용을 검토한다. 편집자는 책에 대한 최초의 독자다. 저자의 글이 독자에게 틀림없이 전달되도록 편집자는 저자에게 글의 구성과 표현과 길이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전달한다. 편집자의 눈을 거친 원고는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다. 글자는 종이 위에서 읽혀야 할 것과 읽히지 않아야 할 것으로 나뉘고, 먼저 읽어야 할 것과 나중에 읽어야 할 것으로 나뉜다.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책은 인쇄공에게 넘어간다. 인쇄소에서는 종이를 준비한다. 인쇄에 필요한 인쇄판을 만들고 잉크를 갠다. 인쇄기에 인쇄판이 걸리고, 잉크가 인쇄판의 글자에 발려진 뒤 종이에 옮겨진다. 비로소 종이에 글자가 나타난다. 인쇄된 종이는 크기에 따라 알맞게 접힌 뒤 여러 장이 겹쳐진다. 종이의 한쪽 면을 실로 꿰거나 풀로 붙여 움직이지 않게 한 뒤 표지를 씌운다. 표지를 씌운 종이 뭉치는 책등을 뺀 나머지 세 면을 칼로 잘라 가지런히 한다.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독자는 책을 고른다. 미국 사람의 98퍼센트, 한국 사람의 94 퍼센트쯤이 책의 제목을 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한다. 그러나 책의 제목이 독자가 기대한 내용과 다른 경우도 있다. 대개는 저자나 출판사가 제목을 잘못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보고 책을 골랐다면 값을 치르기 전에 책의 목차와 머리말, 그리고 눈길이 가는 책의 한 대목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도 비슷하다. 책값을 치르지는 않지만 시간은 돈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책이 마음에 들면 책값을 치른다. 책의 값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비싸다는 사람도 있고 싸다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내용이라면 더 싼 값을 치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같은 책이 아니라면 같은 내용의 책은 없다. 책의 값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책은 그 내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책으로부터 자신이 얻을 효과를 짐작해 책값을 평가해야 한다. 과연 이 책을 읽고 내가 얻을 것은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대답하기 힘든 문제다. 책의 내용도 문제지만, 읽는 자신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같은 사람이 읽는다고 해도 언제 읽는가에 따라 그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인다. 자기가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내용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책을 골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독자라면 같은 값을 치르더라도 독서의 효과는 높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같은 값을 치르더라도 책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책은 언제, 어떻게 골라서, 어떻게 읽는가가 중요하다. 책의 가치는 저자가 반, 나머지 절반은 독자가 결정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독서법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읽어야 할 책이 있고,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읽기 싫은 책도 있고, 읽어서는 안 된다는 책도 있다. 천천히 읽으라는 말도 있고, 닥치는 대로 읽으라는 사람도 있다. 한 권을 여러 번 읽는다는 사람도 있고,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는다는 독서광도 있다. 백인백색의 주장이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방법’보다 ‘주제’가 중요한 것이 독서다. ‘어떻게 읽는가’보다 ‘무엇을 읽는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당기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매력이 없는 책은 뒤로 미뤄두는 것이 현명하다. 읽기 싫은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또 그럴 이유도 없다. 만일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데 꼭 필요한 책이거나 관련이 깊은 책 거의 모두를 읽기가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꾹 참고 끝까지 읽어야 할까? 아니다. 전공과 관련된 모든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면 그 원인은 하나뿐이다. 전공을 잘못 고른 것이다. 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므로 하루 빨리 전공을 바꿔야 한다. 어떤 전공이 바람직한가? 읽고 싶은 책이 많은 분야가 적당하다. 앞에서 말했듯, 대학은 책으로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는 주제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주제를 다룬 책 가운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만일 그 책의 종류가 수백 종이라면 어느 것부터 읽어야 하는가? ‘재미있는’ 것부터 읽는 것이 좋다. 재미있는 책은 빨리 읽게 된다. 그다음 읽어야 할 책은 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책과 책은 연결되어 있다. 어떠한 책도 다른 책과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든 책은 지식의 가족 관계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재미있게 읽다보면 그 책의 아버지와 어머니, 딸과 아들이 어떤 책인지 알게 된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멀다. 삼촌과 이모는 형과 동생의 관계보다 멀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책은 그다음에 읽기 편하다. 관계가 먼 책은 읽기가 힘들다. 아버지와 아들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보다 비슷한 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자. 그리고 쉬운 책을 읽자. 가족의 계보를 따라 가까운 책을 먼저 읽자. 이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가족의 족보를 알게 된다. 쉽고 재미있게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의 할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남들이 보면 어려운 책이지만 이미 아버지와 삼촌을 만나고 난 뒤여서 나에게는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왜 아버지와 삼촌을 거슬러 할아버지로 올라가야 할까? 할아버지에서 시작해 손자로 내려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책의 내용이 읽는 자신의 관심사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책은 교양을 쌓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지식을 넓히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 교양도 쌓이고 공부도 잘하게 되고 지식도 넓어지지만, 그 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교양을 쌓기 위해 읽는 책은 무미할 뿐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읽는 책은 시험이 끝나면 잊히기 마련이다. 지식을 넓히기 위해 읽는 책은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아리는 닭이 되지만, 닭은 병아리가 되지 않는다. 닭은 늙어 죽을 뿐이다. 호기심은 집중력을 만들고, 집중력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상력은 기억력을 높인다. 높은 기억력은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더 많은 상상력은 더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교양을 위해, 성적을 위해, 지식을 위해 억지로 읽는 책은 이런 기적을 만들지 못한다. 호기심을 억누르고,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상상력을 메마르게 하고, 기억력을 떨어뜨린다. 그 가운데 가장 나쁜 결과는 ‘책과 멀어지는 것’이다. 책과 멀어지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꼭 같이 좋아해 왔던 수많은 선배와 친구와 동업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쁘고 불행한 일은 우리 인생에서 찾기 힘들다.
다독의 비법
책은 한 권씩, 빨리 읽어야 한다. 두 권 이상의 책을 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쉬울 줄 알고 골랐는데 어렵다거나, 재미있을 줄 알고 골랐는데 책장이 넘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책을 들고 시간을 끌게 된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이 가방으로 들어가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책상 위로 올라간다. 그러고는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 다른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하면 그 책은 잊히고 이리저리 뒹굴다가 책꽂이에 자리를 잡게 된다. 결국 그 책은 읽히지 않는다. 이렇게만 되어도 다행이다. 읽던 책의 책장이 넘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다른 책을 고르지 못한다. 어쨌든 그 책을 읽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책을 고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읽기 힘들어서, 또는 바빠서 잠시 책을 덮어두었을 뿐이지 그 책을 포기하거나 읽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간다. 어느새 훌쩍 1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책에 대한 독서는 시작되지 않는다. 이렇게 한두 달이 흘러버리면 어느새 책과의 만남은 자신의 일상에서 과거의 기억으로 희미하게 사라진다. 책을 읽지 않는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책을 읽자고 맘을 다잡고 시작한 한 해의 독서 계획이 어느새 다른 잡다한 일들로 채워져 버릴 때 우리는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왔음을 알아채곤 한다.
들고 있는 책의 책장이 넘어가지 않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책을 ‘빠르게 읽어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빠르게 읽어야 빠르게 읽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손에서 책을 놓기 전에 그 책의 마지막 쪽을 만날 수 있는 속도로 읽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1시간 만에, 또는 30분 만에. 그것도 길다고 느껴지면 10분, 또는 5분 만에 마지막 장을 읽을 수도 있다. 처음 열댓 쪽을 읽은 뒤 ‘이 책은 재미가 없다’ 싶거나 ‘이건 너무 어렵구나’ 싶으면 가차 없이 마지막 장을 향해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겨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난 뒤 그 책의 첫 장이나 독서 수첩에 이렇게 쓴다. ‘2009년 3월 5일, 속독하다.’ 그러고 나서는 미련 없이 재미있고 쉬운 책을 고른다. 새로운 책의 독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책과 헤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독서 방법에 대해 너무 편안한 방법이라거나 너무 쉬운 방법이어서 독서의 권위와 내실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책과 독서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려운 책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내야 자신의 지식이 넓어지고 교양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책 한 권을 붙들고 씨름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통해 기쁨과 성과를 맛보는 일은 드물다.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당신의 독서능력과 성향에 맞지 않는 책을 골라 불운한 독서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에게 맞지 않는 책은 다음 기회에, 자신의 독서 능력이 향상되고 관심이 확장되었을 때 다시 읽으면 된다. 그때는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많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렵고 재미없는 책을 들고 씨름하다 독서의 흥미를 상실하고 책과 멀어지면 독서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잃게 된다. 그러므로 읽던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다. 독서의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권씩
책은 한 권을 읽은 뒤 다음 책을 읽어야 한다. 한 번에 두 권, 세 권씩 들고 다녀서는 독서가 되지 않는다. 여러 권의 책을 펼쳐놓고 여기저기를 비교하는 것은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찾는 것이다. 보고서를 쓰거나 논문을 쓸 때 필요한 방법이다. 책을 읽을 때 반드시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처럼, 꼭 같은 이유로 책은 한 권을 읽고 다음 책을 읽어야 한다.
이것은 책의 속성 때문에 그렇다. 책은 신문 기사나 잡지 기사, 인터넷의 글 모음과는 다르다. 글의 양이 많고 적다거나, 다루는 내용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책은 책만의 구조와 진행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책은 그 책이 다루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재를 순차적으로 진행시킨다. 저자가 책을 쓸 때의 과정을 살펴보면 책의 이러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저자는 처음에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것이 책의 주제다. 목표가 결정되면 그 목표를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을 찾는다. 이것이 소재다. 소재를 수집한 뒤에 저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야기의 순서를 짜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소재의 순서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재의 순서가 결정되면 이야기의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1인칭, 2인칭, 3인칭의 화법과 논증, 설명, 제시의 논리와 직접, 간접의 거리와 단락, 절, 장의 길이와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과 이곳, 저곳, 그곳의 무대와 서사, 서정의 감정과 희극, 비극의 판결과 건조, 유장의 문제와 단문, 장문의 속도와 주관, 객관의 관점 등 무수한 변수를 놓고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을 결정한다. 주제와 소재, 그리고 이야기의 방식이 합쳐지면 하나의 양식을 이루는데, 책은 바로 이런 양식의 결과물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주제를 파악한다거나 소재를 획득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와 함께 저자의 이야기 방식을 파악하는 과정이 곧 독서의 핵심이다. 같은 주제를 비슷한 소재로 이야기한 책이 수도 없이 많지만 같은 책이 한 권도 없는 까닭은 책이 저자의 양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에 드러나는 저자의 양식은 수많은 요인들을 실로 사용해 완성한 한 장의 직물과 같다. 직물을 풀어헤쳐 다시 실을 얻으려면 우리는 그 직물의 첫 번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책도 그러하다. 책을 읽는 것은 직물의 실마리를 찾아 직조의 순서와 구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독서는 바로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이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이것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저자의 저술과정을 따라가며 경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중간중간 잘라보게 되면 실마리는 찾아지지 않는다. 실마리를 찾지 못했으므로 직물의 직조 과정은 보이지 않게 된다. 마음이 바쁜 독서가는 마음이 바쁜 직조공처럼 가위를 들고 직물을 여기저기 자르기 시작한다. 실은 끊어지고 새로운 직조는 불가능해진다. 이야기의 흐름을 놓친 독서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방법도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독서가에 의해 선정되는 여러 권의 책은 그의 머릿속에서 한 권의 책이 그러하듯 실처럼 연결된다. 앞에 읽은 책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실마리가 되었고, 지금 읽는 책은 다음에 읽을 책의 실마리가 된다. 이렇게 쌓여가는 다양한 색깔과 재질의 섬유들이 독서가의 독특한 반성력과 상상력에 의해 한 올, 한 올 짜여가면서 독서가의 의식과 교양과 지식의 직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두 권 이상의 책을 들고 다니는 버릇의 단점을 또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서의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한꺼번에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없는 것은 한 번에 두 개의 공을 던질 수 있는 야구 투수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두 권 이상의 책을 가방에 넣고 읽지도 않으면서 등하교 길을 수없이 왕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읽었다면 왜 들고 다니겠는가? 왜 책을 읽지 않을까? 들고 다니는 책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재미가 없을까? 자신이 읽기 위해 고른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이 글의 앞에서 이미 그 까닭과 해결 방법을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두 권의 책을 한 번에 들고 다니지 말라. 책을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두 권의 책을 든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어느 책을 읽을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나의 독서법
지금까지 책과 독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독서 방법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나의 방법이다. 책을 사면 빨리 읽는다. 읽을 때 눈에 띄는 곳에는 줄을 친다. 잘 보이게 표시한다. 책을 읽으며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책 위에 적는다. 책의 저자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이야기를 의심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라면 이렇게 쓰겠네.’ 가끔 이런 생각을 책 위에 적어놓기도 한다. 일단 책을 열면 최대한 빨리 읽는다. 다 읽고 난 뒤 책의 첫 장에 그 날짜를 쓰고 내 이름을 적는다. 옛날에는 책을 사면 이 책이 내 책임을 표시하기 위해 책을 산 날 이름을 적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다 읽은 날 이름을 적는다. 읽지 않은 책에는 이름을 적지 않는다. 이렇게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을 다시 펴들고 줄친 곳을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때는 반드시 인쇄된 책의 쪽수를 적어둔다. 메모해 둔 글자도 입력한다. 대개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이때 나는 그 책을 다시 한 번 읽게 된다. 입력해 둔 내용은 가끔 읽어보거나 글을 쓸 때 참고한다. 한겨울에 곶감 먹듯이 그렇게 가끔 다시 읽는다.

Quick Menu

  • 학생포탈
  • 도서관
  • 입학안내
  • e-class(강의자료)
[01811] 서울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양대학
TEL : 02-970-6251~2 FAX : 02-977-6220
Copyright (c)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