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문화와 교양, 넘치게 쌓아가기
인터넷,
무한의 확장하는 지성의 신경망
백욱인
인터넷은 컴퓨터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다. 그러나 컴퓨터 네트워크의 말단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인터넷은 대중들의 개별적인 지성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집합지성의 신경망’이기도 하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촘촘한 그물망의 한 노드를 이루면서 서로 생각과 의지와 감정, 행동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집합지능’은 여러 사람들의 협력과 협동을 통해서 이뤄지는 지능의 네트워크다. 집합지능은 협동과 조정, 그리고 상호 인정을 통해서-오픈 소스, P2P, 위키피디아 등-서로 생각들을 나누고 공동 협동을 통해서 집합적인 지식을 만들어낸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새로운 지성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그런 것이 ‘글로벌 브레인’을 이뤄낸다.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는 대중지성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결과물의 좋은 사례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참여해서 특정한 개념이나 사실에 대해서 서술하고 수정하면서 만들어지는 공동의 백과사전이다. 집합지능으로 만들어지는 지식은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생물체처럼 살아 있다.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에서의 집합행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의지와 감정의 교류를 바탕으로 결국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대중지성의 사례로 2008년의 촛불시위를 들 수 있다.
매클루언M. McLuhan의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라는 경구를 더욱 극단으로 끌고 가면 지식과 정보의 외화가 ‘전 지구적인 두뇌global brain’를 만들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컴퓨터가 두뇌의 확장이라면 컴퓨터 네트워크는 전 지구적 차원에 걸친 두뇌들의 결합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결합은 데이터베이스의 전 지구적인 결합이며, 이는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지성의 실시간 연결이다. 피에르 레비Pierre Lévy는 이를 ‘집합적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라 부른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생성과 축적은 ‘집합적인 지능’을 통해 만들어지고 집합적 지성을 촉진한다. 집합적인 대중지성은 ‘상호 간의 이해’와 ‘공조’를 통해 만들어진다. 개인들의 지식이 서로 링크를 형성하고 타인의 지적 생산물에 서로 변형과 추가를 가함으로써 집합적 지식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네트의 정보와 지식은 자동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되거나 아카이브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디지털로 이뤄지는 ‘정보의 저장고’다.
이러한 전자 아카이브는 공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지식과 정보의 지구화를 촉진한다. 공간적 거리의 축소와 소멸은 지역 간의 정보교환과 개방성을 더욱 확대한다. 지식이 외화되어 데이터베이스화되거나 아카이브로 만들어지면 그것은 ‘집합적인 지식’, 혹은 ‘정보의 집합’으로 변환된다. ‘집합적 지능’이 상호 인정과 개인의 확장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물화된 지능 공동체에 대한 숭배’로 떨어질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식의 단순한 연결에만 치중할 경우 전 지구적 두뇌는 물신화된 지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보의 흐름과 ‘나’
우리는 몸으로 체험한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의 기억과 활동은 내 머리 속이 아니라 컴퓨터의 메모리에 매 순간 저장된다. 컴퓨터는 기억의 저장소인 머리를 쉬게 만든다. 더 이상 사물과 직접 만나고 씨름하면서 몸으로 기억을 만들거나 어렵게 마음속에 추억을 새겨둘 필요가 없게 되었다.
눈, 코, 귀, 피부 등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여진 자극은 이미지로 바뀌어 뇌세포 안에 저장된다.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이 이미지의 신호로 바뀌어 뇌세포 어디엔가 새로운 거처에 자리를 잡는다. 사물은 몸을 통해 기억으로 바뀌어 호출을 기다린다. 생명의 지속은 이러한 감각 이미지의 축적 과정이며, 재해석 과정인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캐나다의 미디어학자인 매클루언은 우리의 감각기관이 미디어를 통해 확장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라디오는 귀, 신발은 발, 의복은 피부, 컴퓨터는 중추신경을 확장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거꾸로 뒤집어보면 어떨까? 과연 의복이 촉각을 확장했을까? 그것은 대기와 직접 접촉하는 피부의 인터페이스를 차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컴퓨터가 중추신경을 확장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기억 능력과 판단력을 바깥으로 빼내어 머리 속 뇌세포 활동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만남을 중매하는 매개물이다. 따라서 미디어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은 몸의 감각 활동을 약화하거나 왜곡시킨다. 특정한 미디어는 특정한 감각을 확장하지만 특정한 감각을 위축시키거나 왜곡시킨다. 매클루언의 주장처럼, 책은 서구의 시각 위주 문명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촉각과 청각의 축소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기억을 바깥으로 꺼내어 기계에 저장하고 감각을 전자화하는 사이버스페이스는 공감각을 전자적으로 확장하지만, 실제의 감각과 느낌을 데이터로 치환해 다시 그 데이터를 조작한 뒤 가상 감각을 재현하기 때문에 육체의 통감각과 살아 있는 사물의 힘을 기호화한다.
정보사회에서는 나의 감각기관이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적응해 육체의 살과 피를 데이터 배열과 맞바꾸고, 내 대뇌피질 주름 속의 기억이 거대한 컴퓨터 네트워크의 서버 속으로 편입된다. 나의 확장장치는 내 몸 속이 아니라 내 육체의 바깥에 존재한다. 육체를 떠난 기억과 체험과 의지는 이제 내 몸 속이 아니라 내 몸 바깥에 존재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패러디하자면 ‘사이버스페이스가 사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된다. 기억과 판단의 상당 부분이 대뇌피질의 활동에서 서버의 하드디스크로 옮겨질 때 내 기억의 총량과 기억 활용 능력은 현저하게 쇠퇴한다.
물질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는 없지만, 물질의 기호는 그곳에 저장할 수 있다. 물질과 물질에 대한 기호는 무엇이 다른가? 물질은 실재고, 기호는 실재의 재현이다. 즉, ‘현전presence’과 ‘재현물representation’의 차이다. 사물이 기호로 바뀔 때 사물은 무게와 저항을 거세당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호의 조합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신에, 무게와 힘을 갖지 못한다. ‘기호의 힘’이 ‘사물의 힘’을 대체한다. 그 기호의 조합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감동을 주고 재미를 줄지라도 그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힘을 갖지 못하다. 기호의 조합은 전기 신호로 바뀌어 인간의 감각에 전달될 수 있는 인터페이스 미디어를 통해서만 잠시 재현 형태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기호는 철저하게 상대를 생각해 미리 만들어진 재현물이고, 상대의 반응을 수단-목적 관계로 예측하는 마케팅이다. 사물은 인간 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때로 인간에 거스르는 힘을 갖지만, 사물의 기호는 인간 없이 존재할 수 없고 항상 다른 인간에 의존한다. 이처럼 정보사회는 사물과 인간 간의 직접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야생성wildness’을 거세하고 사물을 기호화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기호의 힘을 더욱 확장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감시와 통제의 문도 열어놓았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와 지식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지식과 정보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디지털 아카이브는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연결과 얽힘을 만들어놓는다. 네트의 아카이브는 하이퍼텍스트의 연결을 통해 시작도 끝도 없는 과정으로 얽히면서 수많은 아카이브의 집합체로 확대된다. 타자에 의해 다시 배열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엄청난 가능성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완성되지 않는 과정 중에 놓이도록 만든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흐름이다. 그것은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 다른 아카이브에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변형되고 확장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타자에 의해 완성되는 관계의 연속이자 지속이다.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특성 때문에 지식과 정보의 완결성은 약화된다. 무수한 타자의 개입과 변형으로 정보와 지식의 완결성은 크게 훼손된다. 개인의 창의력과 집중력에 의존하는 체계적인 저작물은 쇠퇴하고, 공동 작업이나 기동성 있게 현실에 대응하는 부분적 중간 결과물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마치 소프트웨어의 버전업처럼 학술 저작물들도 버전업을 향한 중간 결과물의 형태로 발표되는 경우가 늘어난다. 특히, 온라인으로 자신의 저술을 발표할 경우 이러한 중간적인 과정물로서의 속성은 더욱 커진다.
네트의 지식은 자동으로 아카이브에 저장되면서 새로운 대상과 연결될 준비를 한다. 그것과 연결되는 다른 지식에 따라 지식의 새로운 계열화가 이뤄지고, 그것은 지식의 새로운 생성과 ‘되기’로 이어진다. 디지털 아카이브의 지식은 과정으로서의 지식, 다른 대상과 만남으로써 새롭게 계열화되고 새로운 맥락에 놓이면서 제3의 의미와 내용을 갖게 되는 ‘미완결의 열린 지식’이란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지식은 독립되어 완결된 형태로 존재했던 개별 저자의 완성된 저작에서 발견되는 자기 완결적 지식과는 다르다. 물론, 과거의 저작도 다른 저자와의 연결과 연관을 갖고 있지만, 그 연관의 줄기나 강도 그리고 상호 침투 및 계열화의 정도는 매우 약하고 제한되어 있었다.
결국, 독립 주체의 통일적인 정체성은 여러 주체들의 차이와 다양성에 자리를 양도하기에 이른다. 축적성과 일과성의 동시적 진행은 ‘위키피디아’와 같은 지식 유형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한 사람이 특정 항목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에 가필하거나 첨가할 수 있고 아예 지워버릴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의 지식이 융합되어 축적되는 동시에 하나의 과정으로서 일과성을 갖게 된다. 링크를 통해 서로 다른 항목들과 연결되어 있는 위키피디아의 지식들은 ‘모듈화’와 동시에 ‘상호 연관성’도 보여준다.
인터넷은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시공간의 제한을 뛰어넘어 연결한다. 지식 생산과 소비의 직접적인 연결은 지식의 순환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지식의 생애 주기를 단축시키는 한편,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요구를 확대시킨다. 새로운 지식이 전파되는 시간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될수록 짧아진다.
인터넷은 ‘지식’과 ‘정보’를 혼합한다. 그것은 지식을 정보로 만드는 동시에,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지식은 정보화되고 정보는 다시 지식화되는 과정을 통해, 둘 사이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도록 만든다. 지식이 다른 요소와의 연관성을 상실하고 모듈화되면 정보로 전환된다. 인터넷에서는 맥락이 끊어지고 모듈로 파편화된 지식이 정보의 형태로 제공된다. 그것들 간에는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라는 연결망이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정보의 지식화’로 이르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정보의 지식화’는 최종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개인의 지적 조합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보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간에 어떤 필연적인 조합이나 연관을 갖고 있지 않다. 다른 정보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계기와 연속, 관련의 필연성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다. 지식은 이와 달리 지식을 구성하는 내적 구성 요소 간의 개연성의 조합을 필연화해가는 길에서 만들어진다. 비록 그것이 과정적인 열린 지식일지라도,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지식이란 없다. 내적으로 개연성을 넘어 필연적인 구성을 향한 지향성을 가져야 지식이다. 물론, 하나의 지식과 다른 지식과의 관련성까지 필연화되지는 않지만 진리의 개연성이란 테두리에서 서로 다른 지식들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설혹 어떤 특정 지식이 다른 지식에 의해 반증과 검증의 대상이 되더라도 이를 통해 그들 간의 관계가 맺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 대립되는 지식은 ‘진리’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다.
다른 지식과의 만남의 필연성이 없는 상태에서 내적 구성 요소와의 불완전한 연관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지식보다는 ‘정보’에 가깝다. 이것이 내용의 차원에서 파악한 ‘지식의 정보화’다. 대체로 완결된 지식이나 외화된 지식, 사실적 지식, 단편적 지식은 쉽게 정보화된다. 지식의 정보화는 형식의 차원에서 보면 각종 미디어와 외화를 통해 이뤄진다.
‘지식의 정보화’가 이뤄지면 인터넷이란 미디어로 전달되는 내용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생산된 지식의 상품화는 지식 소비의 증대로 나타난다. 도구적인 지식의 생산은 모듈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지식의 모듈화’는 지적 생산물의 테일러리즘적인 공정화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모듈화되어 이뤄진다거나 각종 단편적인 지식의 링크가 결합되면서 합체 지식을 형성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원래 협동적인 지식 생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월드와이드웹은 지식의 모듈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모듈화된 지식은 소비자에 의해 짜 맞춰지기를 기다리는 반완성 상태의 ‘정보-지식 결합물’로서 그것은 정보와 지식의 중간적인 특성을 지닌다.
모듈화된 지식은 정보와 지식의 통합체인 동시에 자신보다 더 하위단계로 분리되기도 하고, 더 상위 단계로 융합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용자 의존성은 과거의 지식이 지식 생산자인 지식인과 깊게 연결되어 있던 것과 대비된다. 과거에는 지식이 지식인과 합체였고, 그것의 사용자는 생산자와 만나거나 결합되기 힘들었다. 이제 지식은 지식 생산자로부터 쉽게 분리되어 다른 사용자의 필요에 부합하는 형태로 분화되고 쪼개진다. 지식은 응용하기 쉬운 최소 단위로 분리되어 모듈화된다. 모듈화되지 않는 지식은 상업화될 수 없고, 그런 지식은 실용적 성능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수행성에 제약을 갖게 되고, 그런 지식은 상품화되지 않는 바깥 영역으로 밀려나거나 개인적 생산의 한정된 틀에서만 재생산된다.
‘생산적 지식’과 ‘소비적 지식’의 구분과 분리가 어렵게 되는 것도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이와 더불어, 상업화된 지식은 당의정의 형태로 제공된다. 지식의 내용만큼이나 어떤 사탕의 맛을 내어 소비자로 하여금 손이 가게 만드는가가 지식 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마케팅’이 지식에 적용되는 것이다. 학술 지식과 오락 정보 사이에 만리장성이 사라지고, 어떤 경우에는 상품으로서의 지식이 주도권을 장악하기도 한다.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라는 미디어 형식은 정보와 지식의 상호 연결성과 연관성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상호 연관성은 정보와 지식의 ‘파편화’와 ‘모듈화’와 더불어 이뤄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링크를 통해 확대되는 상호 연관성의 효과는 모듈화와 파편화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은 모듈화되고 파편화되지 않으면 서로 연관될 수 없다는 역설이 현실화된다. 지식은 총체성을 상실하고 부분으로 분해된 다음 다시 결합을 통해 새로운 형체의 전체성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런 지식의 내용이 디지털이라는 형식을 갖는다고 현실세계의 지식과 단절되거나 그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지식은 ‘로고 블록’이며, ‘합체 로봇’이다. 다만 지식의 모듈화와 파편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지식의 선택과 합성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매우 빠르고 신속하게 말이다.
이에 따라 간학문적 지식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잡종 지식의 필요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경계의 소멸이나 ‘가로지르기’를 통해 과거 한 사람의 개성과 통일적인 사상의 총체성을 통해 확보되던 지식을 집합적으로 재구성하려 든다. 물론, 파편화된 지식을 서로 연결해 짜깁는다고 새로운 지식의 패러다임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협동 연구와 집합적인 지적 작업의 성과는 장인적인 생산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생산체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개개 지식인의 실존적인 ‘가로지르기’가 개인의 지적 모험이나 몸부림은 될 수 있어도 새로운 지식 생산의 대안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다. 지식이 모듈화되면 지식의 생산 못지않게 ‘지식의 소비능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는 지식의 생산과 소비가 물질적 상품과 달리 소비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용에 실패하는 7가지 방법
현대 정보 사회는 이처럼 인간의 존재나 인식 영역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와 지식에 관한 난해한 질문을 계속하기보다는 다소 실용적인 차원에서 인터넷을 잘 이용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언을 던지는 데 만족하자.
인터넷을 이용해 실패의 쓴맛을 보려면 다음과 같이 해봐라.
첫째, 하루 종일 인터넷과 붙어살아라. 자신의 머리를 인터넷에 꼽고(플러그 온) 절대로 빼지 마라. 인터넷에서 자동으로 정보와 지식이 당신의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와 당신의 머리가 온통 파편화된 정보와 모듈화된 지식으로 꽉 찰 때까지 인터넷과 혼연일체가 되어 살아라. 당신의 뇌세포가 감당할 수 있는 기억 용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현실 세상의 자극과 움직임이 머리 속에 들어올 용량이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인터넷의 정보가 당신의 뇌 속으로 흘러들어오도록 가능하면 24시간 인터넷과 붙어 있어라.
둘째, 남의 저작물을 따 붙이기로 자신의 블로그나 게시판에 옮긴 다음 버젓이 카피라이트를 달아놓는 용감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질러라. 공유의 정신을 잃어버린 인터넷의 무법자가 되라. 반항은 항상 멋있는 젊은이의 특권이니까. 월드와이드웹은 정보의 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아키텍처다. 그러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만약 빌 게이츠처럼 지적 재산권을 밝히고 돈 벌기에 눈이 뒤집혔다면 오늘의 인터넷은 존재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가끔은 한번 생각해 보라.
셋째,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한다. 마음껏 정보를 낚아 올려라. 남의 것도 내 것이고, 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다. 그러니까 소유의 구분 없이 남의 생각도 스스럼없이 내 것과 융합해라.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처음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표절에 표절을 거듭해라.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이 없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표절해라. 인터넷이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촉진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열린 장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바꿔치기하는 짓을 권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깡그리 잊어버려라.
넷째, 용돈이 넘쳐난다면 거침없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급할 때는 리포트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돈으로 바꿔라. 생각하는 고통도 없어지고 넘쳐나는 시간도 때울 수 있다. 교수도 그런 행위를 절대로 쉽게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어라. 온라인 구매는 편리하고 즉각적이기 때문에 속도의 쾌감을 준다. 물건 한두 개쯤 옥션이나 G마켓에서 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빨리빨리의 즉각성에 익숙한 우리는 온라인 구매에 쉽게 매료된다. 더군다나 곧바로 집까지 배달해 준다. 온라인 콘텐츠는 앉은 자리에서 내려받기해서 바로 그 내용물을 열어보거나 실행할 수 있다. 오죽하면 “빨리빨리의 조급한 성격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없었다”는 광고 카피까지 생겨나지 않았는가.
다섯째, 패러디가 인터넷 문화의 꽃이라는데, 가능하면 아무거나 패러디해라. 즐기고 욕하고 놀아라. 노래에 나오는 놀부처럼.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가난뱅이 등치고 애비 없는 아이들 주먹으로 때리며 콧노래 부르며 물장구치며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어절시구 호박에 말뚝 박고 똥 싸는 놈 까뭉개고 애밴 년 배 차대고 콧노래 부르며 덩실덩실” 비판을 상실한 패러디의 극단 형태인 엽기문화를 즐기는 일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패러디는 약한 자를 조롱하거나 욕보이는 비굴한 자의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려라. 패러디가 힘을 가진 자와 강한 자, 권력에 대한 비판의 무기가 아니라 약한 자를 조롱하는 야비함이라고 생각해라.
여섯째, 댓글놀이도 마음껏 즐겨라. 남이 쓴 글이 마음에 안 들면 주저 없이 욕하고 저주해라. 글은 가능하면 간결하고 명료하게 써라. 길면 전달하려는 뜻도 약해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중간에 잊어버릴 테니까 그냥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욕만 해대라. 댓글 길이는 두 문장을 넘어서면 안 된다. 욕은 강력하게 구사하고 인신공격으로 바로 들어가라. 남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마라.
마지막으로, 가능하면 하루 종일 다운로드를 받아라. ‘아줌마’라는 검색어 하나만 쳐도 온갖 재미있는 영상물이 주르륵 낚일 것이다. 다운받은 재미있는 포르노 영상물은 시디로 구워 친구들에게 공짜로 나눠줘라. 인터넷은 공유를 촉진한 우리 시대 최대의 이기인데 당신도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하지 않겠는가.